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차용증이 나온다. 십 년 가까이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채권은 가만히 두면 시간이 지나 사라진다. 개인 간의 대여금이라면 10년이지만, 사업자 사이의 돈이면 5년, 약정 이자와 공사대금과 물품대금은 3년이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사라지는 채권이 많다.
반대로 시효는 끊을 수 있다. 채무자의 말 한마디, 일부 변제 한 번, 내용증명 한 장에 이어지는 소송이 시효를 되살린다. 판결을 받으면 어떤 채권이든 10년이 되고, 그 10년이 끝나기 전에 다시 소를 내면 시효는 다시 이어진다. 이 글은 기간의 원칙과 단기시효의 함정, 확정판결의 효과, 시효를 끊는 세 가지 방법, 그리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리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까지 순서대로 정리한다.
원칙 - 민사 10년, 상사 5년
민법 제162조(채권, 재산권의 소멸시효) ①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상법 제64조(상사시효) 상행위로 인한 채권은 본법에 다른 규정이 없는 때에는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그러나 다른 법령에 이보다 단기의 시효의 규정이 있는 때에는 그 규정에 의한다.
민사채권은 10년, 상행위로 인한 채권은 5년이다. 갈림길은 상행위인지 여부다. 당사자 한쪽이라도 회사나 사업자이고 그 영업을 위한 거래라면 상사채권이 되어 5년이 적용된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은 10년이지만, 사업자금으로 빌려준 돈이나 회사가 빌린 돈은 5년이다. 대법원이 다룬 사업자금 대여 사안에서도 5년의 상사시효가 전제로 적용됐다. 빌려준 상대가 개인인지 사업자인지, 돈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절반의 시간이 사라지는 셈이다.
기산점은 변제기다. 갚기로 한 날부터 세고,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면 채권이 성립한 때부터 센다. 차용증에 변제기가 없다면 시효는 이미 오래전부터 흐르고 있었을 수 있다.
단기소멸시효 -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는 채권들
민법 제163조(3년의 단기소멸시효) 다음 각호의 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1. 이자, 부양료, 급료, 사용료 기타 1년이내의 기간으로 정한 금전 또는 물건의 지급을 목적으로 한 채권 3. 도급받은 자, 기사 기타 공사의 설계 또는 감독에 종사하는 자의 공사에 관한 채권 6. 생산자 및 상인이 판매한 생산물 및 상품의 대가
여기서 많은 분들이 놀란다. 3년짜리 채권의 목록에는 일상의 거래가 대부분 들어 있다. 이자와 급료, 월세 같은 사용료처럼 1년 이내의 기간으로 정해 지급하는 채권, 의사와 약사의 치료비와 약값, 도급받은 자의 공사대금, 변호사와 법무사 등의 보수, 생산자와 상인이 판매한 상품의 대가, 수공업자와 제조자의 채권이 모두 3년이다. 여관과 음식점의 숙박료와 음식값, 동산의 사용료, 노역인과 연예인의 임금, 학생의 교육비는 1년이다(제164조).
유의할 조합이 몇 가지 있다. 대여금 원금은 10년이어도 약정 이자는 1년 이내의 정기 지급 채권이라 3년에 걸린다. 사업자 사이의 거래라고 5년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상인이 판매한 상품 대가는 3년이다. 하도급 공사를 하고 받지 못한 공사대금도 3년이라, 공사 완료 뒤 3년을 넘기면 원청에 직접 청구할 길도 함께 막힌다. 상법의 5년은 다른 법령에 더 짧은 시효가 있으면 그쪽이 우선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으므로, 상사채권이라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그 채권이 단기시효 목록에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확정판결을 받으면 10년
민법 제165조(판결등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 ①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은 단기의 소멸시효에 해당한 것이라도 그 소멸시효는 10년으로 한다. ② 파산절차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 및 재판상의 화해, 조정 기타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것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도 전항과 같다.
단기시효의 불리함을 한 번에 뒤집는 것이 확정판결이다. 3년짜리 공사대금이든 1년짜리 음식값이든 판결로 확정되면 그때부터 10년이 된다. 확정된 지급명령이나 재판상 화해, 조정처럼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판결 확정 당시 아직 변제기가 오지 않은 채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제3항). 시효가 짧은 채권일수록 일찍 판결이나 지급명령을 받아 두는 것이 채권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시효를 끊는 세 가지 - 청구, 압류, 승인
민법 제168조(소멸시효의 중단사유) 소멸시효는 다음 각호의 사유로 인하여 중단된다. 1. 청구 2.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 3. 승인
시효가 중단되면 그때까지 지난 기간은 없던 것이 되고 시효는 처음부터 다시 흐른다. 사유는 셋이다.
첫째, 청구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재판상 청구, 즉 소 제기다. 대법원은 지급명령 신청도 재판상 청구에 해당하고, 지급명령 신청이 각하된 뒤 6개월 안에 다시 소를 제기하면 지급명령을 신청한 때에 시효가 중단된 것으로 본다고 했다(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다54686 판결). 다만 소가 각하되거나 기각되거나 취하되면 중단의 효력이 없고, 그 경우에도 6개월 안에 다시 재판상 청구나 압류 등을 하면 최초의 청구로 중단된 것으로 본다(제170조). 내용증명은 어떨까. 내용증명으로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최고인데, 최고는 6개월 안에 재판상 청구나 압류, 가압류 등을 하지 않으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제174조). 내용증명은 시효를 끊는 것이 아니라 6개월의 시간을 버는 것이다. 채무자가 내용증명을 받고 검토할 시간을 달라며 이행을 미룬 경우에는 그 회답이 있을 때까지 최고의 효력이 이어져 6개월도 그때부터 센다(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2다35620 판결).
둘째, 압류와 가압류, 가처분이다. 소송 전이라도 채무자의 재산을 가압류하면 시효가 중단된다. 임박한 시효를 막으면서 재산까지 묶어 두는 방법이다.
셋째, 승인이다.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뜻을 채권자에게 표시하면 시효가 중단된다. 대법원은 채무승인이 채무자가 상대방의 권리나 자신의 채무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을 표시하는 관념의 통지라고 본다(대법원 2023. 8. 18. 선고 2022다301906 판결). 그 방법에는 아무런 형식이 요구되지 않고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상관없으며,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와 액수를 인식하고 있음을 상대방이 추단할 수 있는 방법이면 족하다(대법원 2025. 6. 5. 선고 2025다210470 판결). 일부를 갚는 것, 이자를 보내는 것, 각서를 써 주는 것,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답하는 것이 모두 승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회사 측 인사가 변제를 요구하는 채권자에게 정리하겠으니 기다려 달라고 여러 차례 답한 사안에서 승인을 부정한 원심을 파기했고, 채무자가 자신이 대표인 회사 명의로 차용증상 채무를 인수해 변제하겠다는 확인서를 써 준 사안에서도 승인의 성립 여부를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채무자에게는 반대로 경고가 된다. 시효가 완성된 뒤라도 일부를 갚거나 채무를 인정하면 시효의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10년이 끝나기 전에 -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
판결을 받아 10년이 됐어도 그 10년 안에 받지 못하면 다시 시효가 문제된다. 이때 같은 청구로 다시 소를 낼 수 있을까. 확정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어 같은 소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확정판결 채권의 10년 경과가 임박한 경우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는 소의 이익이 있고, 후소 법원은 확정된 권리의 요건을 다시 심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8다22008 전원합의체 판결). 압류나 승인은 횟수 제한이 없는데 재판상 청구만 한 번으로 제한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해 대법원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재판상 청구가 있다는 점만 확인을 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하고, 채권자가 이행소송과 확인소송 중 자신의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대법원 2018. 10. 18. 선고 2015다232316 전원합의체 판결). 같은 이행소송을 반복하면 채무자가 청구이의 사유를 조기에 내도록 강요받고 법원은 불필요한 심리를 하며 이중집행의 위험이 생기는 문제를 피하려는 취지다. 두 판결 모두 영구히 소멸하지 않는 채권을 만든다는 반대의견이 붙었지만, 현재 실무는 다수의견에 따라 운영된다. 판결을 받은 채권자라면 10년의 만료일을 달력에 적어 두고, 그 전에 재소로 이어야 한다.
실무 순서 - 기간 확인, 최고, 소송, 관리
순서는 넷이다. 먼저 채권의 종류와 변제기를 확인해 10년, 5년, 3년, 1년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와 만료일을 계산한다. 만료가 가까우면 내용증명으로 최고해 6개월을 확보하고, 그 안에 지급명령이나 소를 제기하거나 가압류를 한다. 채무자가 갚겠다는 말이나 일부 변제를 한 흔적은 문자와 계좌 기록으로 남겨 승인의 증거로 삼는다. 판결이나 확정된 지급명령을 받으면 10년의 만료일을 관리하고, 만료 전에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낸다.
정리 - 시효는 채권자가 움직일 때만 멈춘다
정리하면 이렇다. 민사 10년, 상사 5년이지만 이자와 공사대금과 물품대금은 3년이다. 내용증명은 6개월 안에 소송이나 압류로 이어야 효력이 있다. 일부 변제나 기다려 달라는 말 한마디가 승인이 된다. 확정판결은 10년이고, 끝나기 전에 다시 소를 내면 이어진다.
오래된 차용증을 발견했다면 먼저 날짜를 세어 보고, 아직 시간이 남았다면 오늘 움직여야 한다. 시효는 채권자가 움직일 때만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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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9. 9.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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