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일파 후손의 땅을 국가가 환수했다는 소식이 나올 때마다 같은 질문이 따라붙는다. 조상이 한 일로 후손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칙은 그 질문이 맞다. 우리 헌법에서 조상의 행위를 이유로 후손에게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
그런데도 환수가 이루어진다. 이 글은 그 예외가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짚는다. 특별법이 걸어온 길과 현행법의 환수 요건, 그리고 실제로 환수까지 가는 데 남아 있는 벽까지 순서대로 본다. 마침 시점도 맞다. 2010년 활동을 마친 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되살아나 올해 12월부터 다시 움직인다.
원칙은 그대로다 - 두 개의 헌법 조항
이 문제 앞에는 헌법 조항 두 개가 벽처럼 서 있다.
헌법 제13조 ②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③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제3항이 연좌제 금지다. 아버지가 한 일로 아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것이고, 이는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진다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명문으로 확인한 것이다.
제2항은 다른 각도의 벽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새 법을 소급 적용해 재산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뜻이다. 친일재산 환수는 100년 전 취득한 재산을 2000년대에 만든 법으로 국가 소유로 돌리는 일이니, 이 조항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두 벽을 넘지 못하면 환수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벽을 넘게 했는가.
사람이 아니라 재산을 겨냥한다
헌법재판소는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을 정한 특별법을 합헌으로 판단했다(헌법재판소 2011. 3. 31. 선고 2008헌바141 등 결정).
연좌제에 반하지 않는다고 본 이유가 핵심이다. 이 법은 조상이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후손의 재산을 빼앗지 않는다. 후손이 자기 힘으로 벌어 모은 재산이나, 친일재산과 무관하게 물려받은 재산은 건드리지 않는다. 문제 삼는 것은 오직 그 재산 자체가 친일행위의 대가로 만들어진 것인지 여부다. 사람의 신분이 아니라 재산의 출처를 겨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연좌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급입법 쟁점에 대해서도 판단이 있었다. 원인행위 시점으로 소급해 국가 소유로 하는 것은 이미 완성된 법률관계를 뒤집는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지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고 보았다. 그 재산을 보유해 온 신뢰가 헌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크지 않은 반면, 소급입법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압도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이 구조는 낯선 것이 아니다. 앞서 채무자가 재산을 가족 명의로 넘긴 경우를 다루면서, 사해행위취소소송의 피고가 되는 가족은 가족이라는 신분 때문이 아니라 그 재산을 넘겨받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피고가 된다고 정리한 바 있다. 친일재산 환수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후손이라서가 아니라, 그 재산이 애초에 그런 성격의 재산이라서다.
특별법이 걸어온 길
이 법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두 번 끊기고 두 번 이어졌다.
첫 시도는 정부 수립 직후였다.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으나,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법 자체가 폐지되면서 사실상 좌초했다. 그 뒤로 반세기 동안 이 문제는 법의 영역 밖에 있었다.
다시 움직인 것은 2000년대다. 2004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으로 먼저 누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지를 가리는 틀이 마련되었다. 이어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006년 대통령 소속으로 조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실제 환수가 시작되었다.
1기 조사위원회는 4년간 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을 조사해 2,359필지를 국가로 귀속시켰다. 그리고 2010년 활동을 마치고 해산했다. 이후 업무는 법무부로 넘어갔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법무부는 이미 조사가 끝난 재산에 대해 소송을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새로 조사할 기구는 사라진 뒤였다. 사실상 신규 환수가 멈춘 16년이었다.
현행법상 환수 요건 - 무엇이 친일재산인가
환수의 출발점은 그 재산이 친일재산에 해당하는지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 "친일재산"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
요건은 셋으로 나뉜다. 주체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일 것, 취득 시기가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일 것, 그리고 취득 원인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일 것이다.
실무에서 결정적인 것은 뒷문장의 추정 규정이다. 그 기간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협력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100년 전 재산의 취득 경위를 국가가 하나하나 증명해야 한다면 환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추정이 그 부담을 뒤집어, 대가가 아니었다는 점을 후손 쪽에서 밝히도록 만든 것이다.
다만 추정은 추정이다. 그 재산이 친일행위와 무관하게 취득된 것임을 반증으로 밝히면 추정은 깨진다. 실제 소송에서 후손 측이 다투는 지점도 대개 여기다.
친일재산으로 인정되면 효과는 강하다.
같은 법 제3조 제1항 친일재산은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 다만,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국가가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가 것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단서가 붙어 있다. 사정을 모르고 취득했거나 제값을 주고 산 제3자의 권리는 건드리지 못한다. 이 단서가 오랫동안 가장 큰 구멍이었다.
올해 바뀌는 것 - 팔아 버린 돈까지 따라간다
구멍의 모양은 단순하다. 후손이 그 땅을 팔아 버리면, 산 사람은 보호되고 재산은 사라진다. 남는 것은 후손의 통장에 들어간 매각대금인데, 종전 법으로는 그 돈을 환수할 근거가 마땅치 않았다.
2026년 6월 공포된 개정법이 이 지점을 손봤다. 친일재산이 이미 처분되어 재산 자체를 환수할 수 없는 경우, 그 처분의 대가를 환수할 수 있도록 명시한 것이다. 재산을 쫓던 제도가 돈을 쫓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조사 주체도 되살아난다. 16년 전 해산한 조사위원회가 다시 설치되어 최대 5년간 활동한다. 은닉된 친일재산을 알리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함께 들어왔다. 개정법은 올해 12월부터 시행된다.
법무부는 이 개정으로 최소 325억 원 이상을 추가로 환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남는 벽
제도가 정비되었다고 환수가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건에서 부딪히는 벽은 그대로 남아 있다.
가장 큰 것은 시간이다. 100년 가까이 지난 취득의 원인을 다투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와 등기 기록, 당시의 인적 자료를 대조해 그 무렵 누가 무엇을 어떤 경위로 취득했는지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추정 규정이 부담을 덜어 주지만, 그 추정을 걸기 위한 전제 사실부터 자료로 세워야 한다.
두 번째는 재산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매각으로 현금이 되었거나, 여러 사람 명의로 나뉘었거나, 다시 상속을 거치며 관계가 복잡해진 경우가 많다. 처분 대가를 환수할 수 있게 되었어도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를 따라가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세 번째는 개정 후에도 제3자 보호 조항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사정을 모르고 제값에 산 사람은 여전히 보호된다. 거래가 여러 단계를 거쳤을수록 환수의 사정거리는 짧아진다.
마지막은 소송이다. 국가귀속에 불복하면 후손이 소송으로 다투게 되고, 그 법정에서는 결국 추정을 깨뜨릴 반증이 있느냐가 쟁점이 된다. 제도가 아무리 정비되어도 개별 사건은 개별 증거로 결론이 난다.
정리 - 예외가 정당한 이유를 설명해 온 역사
이 제도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된다. 연좌제 금지라는 원칙은 그대로 두고, 그 원칙에 닿지 않는 지점을 찾아 예외를 세운 것이다.
후손을 벌하는 법이었다면 이 법은 헌법 앞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남은 이유는 겨냥하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재산이었기 때문이고, 그 재산이 애초에 정당한 취득이 아니었다는 판단을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난 20년의 논쟁은 예외를 넓혀 온 역사라기보다, 그 예외가 왜 예외로서 정당한지를 계속 설명해 온 역사에 가깝다.
올해 12월부터 조사위원회가 다시 움직인다. 제도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는 결국 개별 사건에서 어떤 자료가 남아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방향을 바꾸어,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다툴 때 마주치는 국가배상과 소멸시효의 문제를 다루겠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8. 18.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 임금체불 최대 징역 5년으로, 무엇이 달라졌나 - 근로기준법 개정과 반의사불벌 예외, 사업주 면책 기준 총정리2026. 10. 8.
- 통장 대여, 빌려만 줘도 처벌될까 - 전자금융거래법 접근매체와 대가 요건 총정리2026. 10. 2.
- 명절 연휴에 일하면 얼마를 더 받나, 추석 근무 수당 - 휴일근로 가산수당과 휴일대체,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총정리2026. 9. 25.
- 추석 선물, 얼마까지 괜찮은가 - 청탁금지법의 금품 기준과 직무관련성2026. 9. 18.
- 부재중 전화도 스토킹이다 - 스토킹처벌법의 성립 요건과 잠정조치, 2023년 개정2026. 9.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