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고 소송을 준비하는 사이에 채무자의 부동산이 배우자나 자녀, 부모 명의로 넘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 실무에서 대단히 자주 보는 장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산이 이미 넘어갔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민사에는 사해행위취소가, 형사에는 강제집행면탈죄가 있다.
이 글은 그 두 갈래를 나란히 놓고 본다. 가족 명의로 넘어간 재산을 왜 가족을 상대로 다툴 수 있는지, 민사와 형사의 요건이 어떻게 다르고 어느 지점에서 결론이 갈리는지, 그리고 개인 재산이 아니라 사업 자체를 새 회사로 옮긴 경우에 등장하는 법인격 부인론까지 순서대로 짚는다.
남의 빚은 갚지 않는다는 원칙 - 그런데 왜 가족을 상대로 다투는가
우리 헌법은 자기책임의 원칙을 명문으로 두고 있다.
헌법 제13조 제3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채무자의 배우자나 자녀, 부모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채무자의 빚을 갚을 의무를 지지 않는다. 재산을 가족 명의로 옮기는 방법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의만 넘겨 두면 채권자의 손이 닿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족이 재산을 넘겨받은 당사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기서 오해가 없어야 한다. 연좌제 금지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재산을 넘겨받았다는 그 사람 자신의 행위가 문제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해행위취소소송의 피고는 채무자가 아니라 재산을 받은 수익자,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넘겨받은 전득자다. 그 사람에게 빚을 떠안기는 소송이 아니라 넘어간 재산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소송이다. 이 구별을 알고 시작해야 청구의 모양이 잡힌다.
민사 - 사해행위취소, 넘어간 재산을 되돌린다
민법 제406조(채권자취소권) ①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채권자는 그 취소 및 원상회복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위로 인하여 이익을 받은 자나 전득한 자가 그 행위 또는 전득당시에 채권자를 해함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필요한 것은 ① 보전할 채권의 존재 ② 채무자가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했을 것 ③ 그 행위로 채권자를 해한다는 채무자의 인식 ④ 수익자 또는 전득자의 악의다.
실무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네 번째의 증명 구조다. 채무초과 상태의 채무자가 사실상 유일한 재산을 처분하면 채무자의 사해의사와 수익자의 악의가 추정된다. 그리고 수익자가 악의라는 점을 채권자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자 스스로 선의였음을 증명해야 한다. 배우자나 자녀에게 넘긴 사안에서 선의 증명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운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피보전채권은 원칙적으로 사해행위보다 먼저 성립해 있어야 한다. 다만 사해행위 당시 이미 채권 성립의 기초가 되는 법률관계가 있었고 가까운 장래에 채권이 성립하리라는 고도의 개연성이 있었으며 실제로 성립한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된다. 소송을 걸기 전 독촉 단계에서 미리 재산을 빼돌린 사안에서 의미를 갖는 법리다.
한 가지는 미리 알아 두는 것이 좋다.
민법 제407조(채권자취소의 효력) 전조의 규정에 의한 취소와 원상회복은 모든 채권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
내 비용과 시간을 들여 되돌려 놓아도 그 재산이 나만의 몫이 되지는 않는다. 채무자의 책임재산으로 복귀해 다른 채권자들과 함께 나누는 대상이 된다. 이 점을 모르고 소송을 시작했다가 결과에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시간이 곧 권리다 - 안 날로부터 1년, 있은 날로부터 5년
사해행위취소에는 짧은 기간 제한이 붙어 있다.
민법 제406조 제2항은 취소원인을 안 날로부터 1년, 법률행위 있은 날로부터 5년 안에 소를 제기하도록 정한다. 소멸시효가 아니라 제척기간이라 중단이라는 것이 없다.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협상을 이어가도 기간은 그대로 흘러간다.
취소원인을 안 날은 단순히 채무자가 재산을 처분했다는 사실을 안 날이 아니라, 그 처분이 채권자를 해하는 행위라는 것까지 안 날로 본다. 기산점이 다소 늦춰질 여지가 있다는 뜻이지만, 이것을 믿고 미룰 일은 아니다. 다투는 쪽에서는 채권자가 더 일찍 알았다고 주장하기 마련이고, 그 다툼 자체가 소송의 부담이 된다.
형사 - 강제집행면탈죄, 넘긴 행위 자체를 처벌한다
형법 제327조(강제집행면탈) 강제집행을 면할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 손괴, 허위양도 또는 허위의 채무를 부담하여 채권자를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주목할 것은 이 죄가 위태범이라는 점이다. 대법원은 현실적으로 강제집행이나 가압류·가처분의 집행을 받을 우려가 있는 객관적인 상태, 즉 채권자가 본안 또는 보전소송을 제기하거나 제기할 태세를 보이고 있는 상태에서 강제집행을 면탈하려는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허위양도하여 채권자를 해할 위험이 있으면 성립한다고 본다(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3999 판결). 실제로 채권자가 손해를 입는 결과까지 발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대법원 2008. 5. 8. 선고 2008도198 판결).
여기서 왜 시점이 중요한지가 드러난다. 채권자가 소송을 제기할 태세를 보인 뒤에 명의가 넘어갔는지, 그 전이었는지가 성립을 가른다. 등기부에는 이전 일자와 이전 원인이 남는다. 내용증명을 보낸 날, 소장을 접수한 날, 가압류를 신청한 날과 등기부상 이전 일자를 나란히 놓으면 그 선후가 그대로 드러난다.
은닉의 범위도 생각보다 넓다. 판례는 재산의 소재를 알 수 없게 하는 경우뿐 아니라 소유관계를 불명하게 하는 경우도 은닉에 포함된다고 본다. 명의만 바꾸어 두는 방식이 여기에 걸린다.
재산을 넘겨받은 가족도 안전하지 않다. 사정을 알면서 허위 양수인이 되거나 허위의 채권자 노릇을 했다면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와 실무의 태도다.
민사와 형사의 결론이 갈리는 지점 - 진짜로 넘겼다면 허위양도가 아니다
두 절차를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법원은 진의에 의하여 재산을 양도하였다면 그것이 강제집행을 면탈할 목적이었고 채권자에게 불이익한 결과가 되었더라도 허위양도나 은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대법원 1998. 9. 8. 선고 98도1949 판결). 허위양도란 양도의 진의가 없으면서 형식만 갖추어 소유명의를 바꾸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이 갈린다. 제값을 주고받으며 실제로 넘긴 거래라면 형사는 막힐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받은 돈을 써 버려 채권자의 공동담보가 줄어들었다면 민사 사해행위취소는 여전히 열릴 수 있다. 반대로 대가 없이 명의만 옮겨 둔 전형적인 사안은 두 길이 모두 열린다.
한쪽만 붙들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나쁜 선택이다. 형사 고소는 경찰에 하고, 민사 사해행위취소는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별개의 절차다. 둘은 병행할 수 있고, 실제로 병행하는 편이 나은 사안이 많다. 형사 절차에서 확보되는 자료가 민사에서 쓰이기도 한다. 다만 형사 고소를 했다고 해서 민사의 제척기간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은 앞에서 본 그대로다.
사업을 통째로 옮긴 경우 - 법인격 부인론
개인 재산이 아니라 사업 자체가 사라지는 방식도 있다. 기존 회사는 껍데기만 남기고 같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거래처를 상대로 새 법인을 세워 영업을 이어가는 경우다.
대법원은 기존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나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했다면 이는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이므로,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다는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본다. 그 결과 채권자는 두 회사 어느 쪽에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2004. 11. 12. 선고 2002다66892 판결).
채무면탈 목적은 선언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기존회사가 폐업할 당시의 경영상태와 자산상황, 신설회사의 설립 시점, 기존회사에서 신설회사로 옮겨간 자산이 있는지와 그 정도, 옮겨간 자산에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본다.
축이 하나 더 있다. 회사가 외형만 법인일 뿐 실질은 배후에 있는 사람의 개인기업에 지나지 않거나 법률 적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쓰인 경우에는, 회사와 배후자가 별개 인격임을 내세워 배후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01. 1. 19. 선고 97다21604 판결). 회사가 아니라 그 뒤에 선 사람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길이다.
정리 - 이전 일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재산을 빼돌리는 쪽이 놓치는 것이 있다. 부동산이든 회사든 옮긴 흔적이 공적 장부에 날짜와 함께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 분쟁이 다툴 만한 사건이 되는 근거도 대개 거기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재산이 이미 넘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전에 따져야 할 것들이 있다. 내 채권이 언제 성립했는지, 명의 이전은 언제 이루어졌는지, 그 사이에 독촉이나 소송 제기의 흔적이 있는지, 대가가 실제로 오갔는지, 넘겨받은 사람이 채무자와 어떤 관계인지, 채무자에게 다른 재산이 남아 있는지. 이 여섯 가지가 민사와 형사 어느 쪽이 열리는지, 혹은 둘 다 열리는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다. 사해행위취소의 제척기간은 다투는 동안에도 흘러간다. 재산이 넘어간 정황을 확인한 시점이 대응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재산이 넘어가기 전에 묶어 두는 절차인 가압류와 가처분을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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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8. 8.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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