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어진 뒤 전화를 수십 번 걸었다. 상대가 받지 않아 통화는 한 번도 되지 않았고, 상대의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 표시만 쌓였다.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으니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법원은 이것을 스토킹행위로 본다. 통화가 됐는지는 상관없다.
스토킹을 몰래 따라다니거나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법이 정한 범위의 절반도 보지 못한 것이다. 법정 정의는 그보다 훨씬 넓고, 2023년 개정으로 피해자와 합의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글은 법이 정한 스토킹의 정의에서 출발해 일반적인 인식과 법의 거리, 대법원의 최신 판례, 2023년 개정의 요점, 판결 전에 작동하는 잠정조치, 그리고 최근 경향과 대응 원칙을 정리한다.
법이 정한 스토킹 - 일곱 가지 행위와 두 가지 조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1.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법이 열거한 행위는 일곱 가지다. 상대방이나 그 가족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것, 주거·직장·학교 등의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것, 우편·전화·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것, 물건을 도달하게 하거나 주거 부근에 두는 것, 주거 부근의 물건을 훼손하는 것, 그리고 2023년 개정으로 추가된 두 가지, 즉 개인정보나 위치정보를 정보통신망으로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게시하는 것과 상대방의 이름이나 사진을 이용해 상대방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조건이 붙는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할 것, 정당한 이유가 없을 것, 그리고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킬 것이다. 이 스토킹행위를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면 스토킹범죄가 된다(제2조 제2호). 한 번의 행위는 스토킹행위이고, 그것이 이어지거나 되풀이되어야 범죄가 되는 이중 구조다.
인식과 법의 거리 - 이 정도는 아니겠지가 틀리는 지점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들이 있다. 통화가 안 됐으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 상대가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는 말, 층간소음에 항의했을 뿐이라는 말, 그리고 두어 번밖에 안 했다는 말이다. 앞의 셋은 법의 선을 넘은 것이고, 마지막 하나만 선 안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첫째, 통화가 되지 않았어도 전화를 건 사실 자체가 벨소리와 부재중 표시라는 음향과 글을 도달하게 한 것이다. 둘째, 상대가 실제로 무서워했는지가 아니라 그럴 만한 행위였는지로 판단한다. 셋째, 항의라는 목적이 있어도 방법이 사회통념의 범위를 벗어나면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넷째, 그러나 짧은 단발성 행위가 시간을 두고 두 번 있었던 것만으로는 스토킹범죄의 지속성과 반복성이 증명되지 않는다. 이 네 가지가 최근 대법원 판례가 그은 선이다.
대법원의 최신 판례 - 부재중 전화에서 층간소음까지
부재중 전화가 스토킹행위라는 판단은 대법원 2023. 5. 18. 선고 2022도12037 판결에서 나왔다. 전화를 걸어 상대방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되도록 하여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는 실제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는지와 상관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통화가 됐더라도 내용이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빠져나갈 수 없고, 관계와 경위, 행위 전후의 사정을 종합해 불안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평가되면 스토킹행위가 된다고 했다. 말없이 끊어도 벨소리와 발신번호 표시 자체가 음향과 글의 도달이다.
이 판단은 잠정조치 위반으로 이어진다. 대법원 2024. 9. 27. 선고 2024도7832 판결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하는 잠정조치를 받은 사람이 전화를 걸어 부재중 전화 문구나 수신차단기호가 표시되도록 했다면, 통화 여부와 관계없이 잠정조치를 위반한 것이라고 보았다. 접근금지 기간에 걸었다가 끊은 전화 한 통이 별도의 범죄가 되는 구조다.
불안감의 판단 기준은 대법원 2023. 9. 27. 선고 2023도6411 판결이 정리했다. 스토킹범죄는 위험범이므로, 법이 열거한 행위가 객관적·일반적으로 볼 때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라고 평가되면 현실적으로 상대방이 불안감을 느꼈는지와 관계없이 스토킹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2025. 10. 30. 선고 2025도36 판결은 한 걸음 더 나가, 상대방이 그 행위를 인식했는지조차 묻지 않는다고 했다. 무서워하지 않았다거나 몰랐다는 말은 방패가 되지 않는다.
정당한 이유의 한계는 층간소음 사건에서 드러났다. 대법원 2023. 12. 14. 선고 2023도10313 판결은 아래층 거주자가 수개월에 걸쳐 늦은 밤부터 새벽 사이에 반복해서 벽을 두드리고 음향기기를 틀어 위층에 소음을 전달한 사안에서, 이웃 간 분쟁 중의 행위라고 해서 곧바로 스토킹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인 확인이나 해결 모색을 위한 사회통념상 합리적 범위를 벗어난 이상 정당한 이유 있는 행위로 볼 수 없다며 스토킹범죄의 성립을 인정했다. 항의라는 이름표를 붙였다고 해서 괴롭힘이 정당해지지 않는다.
반대로 한계선을 그은 판결도 있다. 대법원 2026. 4. 16. 선고 2026도2108 판결은 지속적이란 한 번의 행위라도 상당한 시간 계속되어 그 자체로 불안감을 일으키는 경우를, 반복적이란 두 번 이상의 행위 사이에 시간적 근접성과 장소적 연관성,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되는 경우를 뜻한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약 10분간 차량을 따라간 행위와 두 달 반 뒤 약 6분간 접근해 촬영한 행위는 단발성 행위가 두 번 있었던 것에 불과해 스토킹범죄의 지속성과 반복성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성립 범위를 넓게 보되 범죄의 요건은 엄격하게 증명하라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다.
2023년 개정 - 합의해도 처벌된다
2023년 7월 11일 시행된 개정법의 가장 큰 변화는 반의사불벌 조항의 삭제다. 개정 전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어서, 가해자가 합의를 요구하며 피해자에게 다시 접근하는 일이 반복됐다. 지금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혀도 사건이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합의는 양형 사정일 뿐 처벌을 막는 문이 아니다.
같은 개정으로 개인정보 게시와 사칭 같은 온라인 스토킹 유형이 스토킹행위에 추가됐고, 잠정조치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이 새로 들어왔으며, 접근금지 잠정조치의 기간이 늘어났다.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고,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제18조).
잠정조치 - 판결 전에 작동하는 보호 장치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스토킹행위자에 대한 잠정조치) ① 1. 피해자에 대한 스토킹범죄 중단에 관한 서면 경고 2. 피해자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이나 그 주거등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3. 피해자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한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3의2.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 4.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의 유치
스토킹처벌법의 특징은 유죄 판결 전에 법원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검사의 청구로 법원이 서면 경고,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유치장이나 구치소 유치 중 필요한 조치를 명한다. 접근 금지와 전자장치 부착은 3개월을 넘을 수 없지만 피해자 보호에 필요하면 두 차례에 한정해 각 3개월씩 연장할 수 있고, 유치는 1개월을 넘을 수 없다(제9조 제7항). 급박한 경우에는 사법경찰관이 먼저 접근 금지를 명하는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은 1개월을 넘지 못한다.
기간이 끝난 뒤가 문제다. 대법원은 연장 결정 없이 기간이 만료된 접근금지 잠정조치는 효력을 잃어 사후에 연장할 수 없지만, 재발 우려와 피해자 보호 필요성이 있으면 같은 범죄사실을 이유로도 새로운 잠정조치를 다시 청구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대법원 2023. 2. 23. 자 2022모2092 결정). 새로운 범죄가 생기기를 기다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만료일을 미리 챙겨 연장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놓쳤더라도 재청구의 길이 있다.
잠정조치를 어기면 그 자체가 범죄다. 접근 금지나 전기통신 접근 금지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고, 전자장치를 훼손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제20조). 앞서 본 것처럼 부재중 표시를 남긴 전화 한 통도 위반이다.
최근 경향과 대응 - 피해자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게
흐름은 분명하다. 성립 범위는 넓게, 요건의 증명은 엄격하게, 사전 개입은 강하게다. 부재중 전화와 층간소음 소음까지 스토킹행위로 포섭하면서도 지속성과 반복성은 엄격히 증명하라고 하고, 전자장치 부착과 잠정조치 재청구를 허용해 판결 전 보호를 두텁게 했으며, 합의로 처벌을 막는 길은 닫았다. 스토킹이 더 큰 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개입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피해자라면 기록이 먼저다. 통화 목록과 메시지, 현관 앞 영상처럼 반복의 흔적을 남기고, 112 신고로 응급조치와 긴급응급조치를 받은 뒤 잠정조치 청구를 요청한다. 잠정조치가 내려지면 만료일을 관리해 연장을 요청한다.
가해자로 지목됐다면 연락을 끊는 것이 유일한 방어다. 오해를 풀겠다는 전화와 메시지가 새로운 스토킹행위가 되고, 잠정조치 중이라면 그 자체로 별도의 범죄가 된다.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거나 지속성과 반복성이 없다는 다툼은 상대방이 아니라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변호인을 통해 해야 한다.
정리 - 법의 선은 여기에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부재중 전화 표시만 남겨도 스토킹행위다. 상대가 느꼈는지가 아니라 느낄 만한지로 판단한다. 합의해도 처벌된다, 반의사불벌은 폐지됐다. 잠정조치를 어기면 별도의 범죄가 된다. 다만 단발성 행위가 두 번 있었던 것만으로 스토킹범죄가 되지는 않는다.
연락이 닿지 않는 상대에게 한 번 더 거는 전화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문제가 됐다. 가해자로 지목됐다면 연락을 끊는 것이 유일한 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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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9. 7.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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