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결문 중 발췌
법원에서 등기우편 한 통이 도착합니다. 봉투 안에는 처음 보는 사건번호가 적힌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과 진술최고서라는 서류가 들어 있습니다. 내가 빌린 돈도 아니고 내가 당사자인 소송도 아니니, 그냥 두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번 사례는 그렇게 법원의 질문을 그냥 둔 임대인이 결국 추심금 소송의 피고가 된 사건입니다. 치열한 다툼 끝에 이겼다기보다는, 판결을 받은 뒤 실제로 돈을 받아 내는 집행 절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3채무자가 어떤 자리에 서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사건의 배경
의뢰인은 한 회사에 물품을 공급하고 대금을 받지 못한 분입니다. 물품대금 소송에서 회사가 2,400만 원을 여섯 달에 나눠 갚기로 하는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되었습니다. 화해권고결정은 확정되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고,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첫 회차부터 분할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몇 달 뒤 세 차례에 걸쳐 900만 원을 냈을 뿐, 그 뒤로 4년 가까이 한 푼도 갚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지연손해금이 쌓여 남은 채권은 원리금 2,370만 원대가 되었습니다.
판결이나 화해권고결정은 돈을 받을 권리를 확인해 줄 뿐, 그 자체로 돈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채무자가 스스로 갚지 않으면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찾아 압류해야 합니다. 저는 이 단계부터 사건을 맡아 진행했습니다.
판결 뒤의 숙제 - 채무자의 재산을 찾는 일
저는 채무자 회사가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 사무실에 주목했습니다. 그 사무실은 회사 소유가 아니라 임대인에게서 빌려 쓰는 곳이었습니다.
사무실을 빌린 회사는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맡겨 두었고, 임대차가 끝나면 그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은 회사의 재산이고, 압류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사무실을 쓰고 있는 동안 보증금은 임대인에게 그대로 맡겨져 있습니다.
해결방법 -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그리고 진술최고
저는 화해권고결정을 근거로 회사가 임대인에게 가진 보증금 반환 채권에 대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압류명령이 송달되면 임대인은 회사에 보증금을 돌려주어서는 안 되고, 추심명령에 따라 채권자가 임대인에게서 직접 받아 낼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채권자가 그 임대차의 내용을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보증금이 얼마인지, 계약이 언제 끝나는지, 다른 채권자의 압류가 먼저 들어와 있는지는 임대인만 압니다. 그래서 압류와 함께 진술최고를 신청했습니다.
민사집행법 제237조는 압류채권자가 신청하면 법원이 제3채무자에게 압류명령을 송달받은 날부터 1주 안에 서면으로 진술하도록 요구하게 정하고 있습니다. 진술할 내용은 채권을 인정하는지와 그 한도, 지급할 의사가 있는지, 다른 사람의 청구나 다른 채권자의 압류가 있는지입니다. 여기서 제3채무자는 이 사건의 임대인처럼 채무자에게 돈을 줄 의무가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임대인은 진술최고서를 받고도 아무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보증금 액수와 계약 만료일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면서, 압류 뒤에 회사에 보증금을 돌려주면 이중으로 지급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이 우편은 폐문부재로 돌아왔습니다.
추심금 소송 - 답하지 않은 제3채무자가 피고가 되다
민사집행법 제249조 제1항은 제3채무자가 추심절차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압류채권자가 소로써 그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이것이 추심금 소송입니다. 저는 임대인을 피고로 추심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청구의 형태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임대차가 끝나면 임차인의 사무실 인도 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는 동시이행 관계에 있습니다. 계약 종료일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임대인이 회사로부터 사무실을 인도받는 것과 동시에 의뢰인에게 돈을 지급하라는 형태로 청구했습니다.
임대인은 이번에는 소장 부본을 적법하게 송달받았습니다. 그러나 30일이 지나도록 답변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민사소송법 제257조 제1항은 피고가 기간 안에 답변서를 내지 않으면 청구의 원인이 된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보고 변론 없이 판결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저는 무변론판결 선고기일을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법원의 결정
법원은 변론 없이 판결했습니다. 임대인은 채무자 회사로부터 사무실을 인도받음과 동시에 의뢰인에게 23,722,166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었습니다. 소송비용은 임대인이 부담하고, 지급을 명한 부분에는 가집행이 붙었습니다.
이제 임대차가 끝나 회사가 사무실을 비우면, 임대인은 보증금을 회사가 아니라 의뢰인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지급하지 않으면 이 판결을 근거로 임대인 자신의 재산에 강제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보낸 질문서 한 장을 그냥 둔 결과, 임대인은 남의 빚을 둘러싼 소송의 피고가 되었습니다.
법원 서류를 받은 제3채무자라면
이 사건은 채권자 쪽 사례이지만, 같은 서류를 받게 되는 제3채무자에게 더 쓸모 있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보증금을 받은 임대인, 직원에게 급여를 주는 회사, 거래 대금을 줄 회사 모두 제3채무자가 될 수 있습니다.
① 소송의 피고가 아니어도 법원의 진술최고에는 답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술을 게을리하면 법원이 제3채무자를 심문할 수 있다는 규정 외에 따로 제재가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답하지 않으면 채권자는 채권의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어 소송을 낼 수밖에 없고, 제3채무자는 보증금이 실제로 얼마인지, 공제할 연체 차임이 있는지 같은 사정을 처음부터 밝힐 기회를 스스로 놓치게 됩니다.
② 서류를 송달받은 이상 몰랐다는 이유로 책임을 벗기 어렵습니다. 압류명령이 송달되면 압류의 효력이 생기고, 그 뒤에 채무자에게 돈을 주면 그 지급을 채권자에게 내세울 수 없어 같은 돈을 다시 내야 할 수 있습니다. 소장을 받고도 답변서를 내지 않으면 이 사건처럼 변론 없이 판결이 나고, 판결이 확정되면 그 내용을 다시 다투기 어렵습니다.
③ 추심금 판결이 확정되면 제3채무자는 채무자와 같은 처지가 됩니다. 판결에 따른 돈을 내지 않으면 자기 예금이나 부동산이 강제집행의 대상이 됩니다.
누구에게 지급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압류된 금액을 공탁하고 책임에서 벗어나는 길도 있습니다(민사집행법 제248조 제1항). 어떤 경우든 기한이 짧으니, 서류를 받은 직후에 대응 방향을 정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판결이나 화해권고결정을 받아 두고도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집행권원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채무자의 재산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지 찾고, 압류할 대상을 고르고, 제3채무자가 협조하지 않을 때 추심금 소송까지 이어 가는 일은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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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10. 8.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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