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행 사건 상담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상대가 먼저 때렸으니 나는 정당방위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의 경우 틀린 기대다. 우리 판례는 맞아서 되받아친 것을 좀처럼 정당방위로 보지 않는다.
이 글은 두 개의 방패를 다룬다. 부당한 공격에 맞서는 정당방위, 그리고 위급한 상황에서 아무 잘못 없는 제3자에게 손해를 돌리는 긴급피난이다. 그리고 이 글의 후반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다. 형사에서 그 방패가 인정되더라도, 민사의 배상 문제는 따로 굴러간다. 특히 더 큰 사고를 피하려다 옆차를 들이받은 운전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구조다.
정당방위의 세 요건 - 순서의 문제가 아니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요건은 셋이다. 침해가 현재 진행 중이고 부당할 것, 행위가 방위하기 위한 것일 것, 그리고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여기서 많은 분들이 놓치는 것이 두 번째 요건이다. 누가 먼저 때렸느냐는 순서가 아니라, 내 행위가 방어였느냐가 기준이다. 그리고 세 번째 요건이 수위를 통제한다. 지나간 시비에 대한 보복, 이미 끝난 공격에 대한 되갚음, 침해에 비해 과도한 반격은 상당성에서 걸린다.
싸움에서 정당방위가 안 되는 이유
대법원은 서로 공격할 의사로 싸우다가 먼저 공격을 받고 이에 대항하여 가해한 경우, 그 가해행위는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행위의 성격을 가지므로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대법원 2000. 3. 28. 선고 2000도228 판결).
맞고 나서 때린 그 주먹은 방어이기도 하지만 공격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싸움이라는 상호 공격의 장에 스스로 들어간 이상, 순서가 뒤였다는 사정만으로는 방위 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 먼저 맞았으니 무죄라는 셈법이 법정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무에서는 오히려 쌍방 폭행으로 정리되어 양쪽 모두 입건되는 결말이 흔하다.
물론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자리도 분명히 있다. 격투에서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흉기를 들고 나온 공격에 맞선 경우, 싸울 의사 없이 소극적으로 몸을 지키는 데 그친 경우, 싸움이 끝난 뒤 상대가 다시 시작한 공격을 막은 경우다. 공통점은 그 순간의 행위가 공격이 아니라 방어로만 평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도를 넘은 방위는 과잉방위로 형이 감경되거나 면제될 수 있고, 야간의 공포나 당황 속에서 저질러진 때에는 벌하지 않는 규정도 있다(형법 제21조 제2항, 제3항). 다만 이는 사후적으로 다투는 좁은 문이지, 믿고 움직일 기준이 아니다.
긴급피난 - 잘못 없는 사람에게 손해를 돌리는 방패
형법 제22조(긴급피난)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정당방위와 구조가 다르다. 정당방위는 부당한 공격자를 향한 반격이지만, 긴급피난은 위난과 아무 상관 없는 제3자에게 손해를 돌리는 행위다. 그래서 요건이 더 엄격하다. 판례는 피난행위가 위난에 처한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어야 하고,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택하여야 한다고 본다. 다른 길이 있었다면, 덜 다치게 할 방법이 있었다면 이 방패는 서지 않는다.
도로가 알기 쉬운 무대다. 앞차의 난폭운전이나 갑작스러운 낙하물로 대형 사고가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이를 피하려고 핸들을 꺾어 옆 차로의 차와 부딪쳤다고 하자. 브레이크만으로는 피할 수 없었고 그 방향이 피해를 가장 줄이는 선택이었다면, 옆차에 낸 손괴나 상해에 대해 형사적으로는 긴급피난으로 처벌을 면할 여지가 있다. 고의로 남의 차를 들이받고도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형법이 열어 둔 예외적인 통로다.
그런데 민사는 따로 간다
여기서 멈추면 절반만 아는 것이다. 형사에서 무죄라고 해서 옆차의 수리비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민법 제761조(정당방위, 긴급피난) ①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자기 또는 제삼자의 이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부득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 그러나 피해자는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② 전항의 규정은 급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준용한다.
민법에도 면책 규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열쇠는 부득이라는 두 글자다. 민사 법원은 회피가 정말 불가피했는지, 그 방법의 선택에 조금의 과실도 없었는지를 형사보다 촘촘하게 따진다. 속도를 줄일 여지가 있었는지, 확인 없이 급하게 차로를 바꾼 것은 아닌지 같은 사정에서 과실이 하나라도 잡히면 부득이하다고 볼 수 없어 면책은 무너진다. 형사의 결론이 민사로 자동 연장되지 않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옆차의 자리 - 둘 모두에게 전액을 청구할 수 있다
이제 시선을 바꿔 아무 잘못 없이 들이받힌 옆차 주인의 자리에서 보자. 이 구조를 알아야 양쪽 모두 자기 위치가 보인다.
민법 제760조(공동불법행위자의 책임) ①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난폭운전으로 원인을 만든 운전자와 이를 피하려다 실제로 부딪친 운전자. 두 사람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얽혀 하나의 손해를 만들었다면 공동불법행위가 된다. 이때 피해자는 두 사람 중 누구에게든 손해 전액을 청구할 수 있다. 반씩 나눠서가 아니라, 어느 한쪽을 골라 전부를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쪽이 도주했거나 무자력이어도 다른 쪽에게서 전액을 회수할 수 있게 하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다.
그러면 원인도 제공하지 않았는데 전액을 물게 된 회피 운전자는 어떻게 되는가. 배상은 밖으로 하고, 정산은 안에서 한다. 자기 부담 부분을 넘어 배상한 몫은 원인을 제공한 운전자에게 구상으로 되돌려 받는다. 과실의 크기는 피해자와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가해자들 내부에서 나누는 것이다. 사고를 피하려다 가해자의 자리에 선 운전자의 억울함은, 면책이 아니라 이 구상의 절차에서 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리 - 형사의 답과 민사의 답을 따로 확인하라
정리하면 이렇다. 맞대응은 방어이자 공격이라 정당방위가 되기 어렵다. 긴급피난은 유일한 수단으로 최소의 손해를 택했을 때에만 선다. 그리고 그 방패들이 형사에서 섰다고 해서 민사의 배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피해자는 원인 제공자와 직접 가해자 모두에게 전액을 청구할 수 있다.
사건을 마주했다면 따질 것은 넷이다. 내 행위가 방어였는가 맞대응이었는가. 회피가 정말 유일한 수단이었는가. 형사의 결론과 민사의 결론을 각각 확인했는가. 그리고 피해자의 자리라면, 누구에게 청구할 수 있고 상대방들 사이의 과실 다툼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형사와 민사는 같은 사고를 다른 저울로 단다. 한쪽의 무죄를 다른 쪽의 면책으로 읽는 순간, 계산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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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8. 31.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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