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정일자만 받아 두면 보증금은 안전하다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틀렸다. 확정일자는 세 가지 권리 중 하나의 요건일 뿐이고, 그 하나조차 다른 요건이 함께 갖추어져야 생긴다. 앞선 글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구조를 다루었다면, 이 글은 그 보증금이 법적으로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를 본다.
임차인이 하는 행위는 셋이다. 주택을 넘겨받아 들어가 사는 것, 전입신고를 하는 것,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위들이 만들어 내는 권리도 셋이다. 대항력, 우선변제권, 최우선변제권이다. 어느 행위가 어느 권리를 만드는지, 그 권리가 각각 무엇을 해 주는지, 그리고 그 권리보다 앞서는 것은 무엇인지를 차례로 짚는다.
대항력 - 집이 팔려도 계속 살 권리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대항력 등) ① 임대차는 그 등기가 없는 경우에도 임차인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때에는 그 다음 날부터 제삼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
인도와 주민등록, 이 둘을 묶어 대항요건이라고 부른다. 전입신고를 하면 주민등록을 마친 것으로 본다. 등기 없이도 임차권을 제3자에게 주장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다.
효과는 분명하다. 그 집이 팔려도 새 소유자가 임대인의 지위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나가라는 말을 듣지 않고 계약기간을 마칠 수 있고, 보증금도 새 소유자에게 청구한다.
문제는 시점이다. 조문은 그 다음 날부터라고 되어 있고, 대법원은 이를 다음 날 오전 0시부터라는 뜻으로 새긴다(대법원 1999. 5. 25. 선고 99다9981 판결).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의 문제다.
여기서 실무의 함정이 나온다. 잔금을 치르고 이사한 그날 임대인이 그 집에 근저당을 설정하면, 근저당은 당일에 효력이 생기고 임차인의 대항력은 다음 날 0시에 생긴다. 하루도 아니고 몇 시간 차이로 임차인이 후순위가 된다. 잔금일에 근저당을 잡는 방식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선변제권 - 경매에서 순위를 갖는 권리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보증금의 회수) ② 제3조제1항·제2항 또는 제3항의 대항요건과 임대차계약증서상의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은 「민사집행법」에 따른 경매 또는 「국세징수법」에 따른 공매를 할 때에 임차주택(대지를 포함한다)의 환가대금에서 후순위권리자나 그 밖의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보증금을 변제받을 권리가 있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다른 권리다. 이 구별이 이 글의 핵심이다. 대항력은 그 집에 계속 살 권리이고, 우선변제권은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매각대금에서 순서대로 돈을 받을 권리다.
요건은 대항요건에 확정일자가 더해진 것이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오해가 있다. 확정일자를 아무리 일찍 받아 두어도 아직 입주하지 않았거나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우선변제권은 생기지 않는다. 두 요건을 모두 갖춘 때에 비로소 발생하므로, 늦게 갖춘 쪽이 기준이 된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인도와 전입신고를 마쳐 대항력은 있지만 확정일자를 받지 않았다면, 그 집에 계속 살 수는 있어도 경매 배당에서는 순위를 주장하지 못한다. 두 권리는 별개로 붙고 별개로 작동한다.
최우선변제권 - 순위를 뛰어넘는 예외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보증금 중 일정액의 보호) ① 임차인은 보증금 중 일정액을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우선하여 변제받을 권리가 있다. 이 경우 임차인은 주택에 대한 경매신청의 등기 전에 제3조제1항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앞의 둘이 순서를 다투는 권리라면, 이것은 순서를 뛰어넘는 권리다. 보증금이 일정액 이하인 소액임차인은 확정일자가 없어도, 심지어 자기보다 먼저 설정된 근저당이 있어도, 보증금 중 일정액을 가장 먼저 받는다. 조건은 경매신청 등기 전에 인도와 전입신고를 마쳐 두는 것이다.
다만 한계가 뚜렷하다. 보증금 중 일정액의 범위와 기준은 주택가액에서 대지 가액을 포함하여 그 2분의 1을 넘지 못한다(같은 조 제3항). 그리고 애초에 금액 자체가 크지 않다.
현행 시행령을 기준으로 소액임차인에 해당하는 보증금 상한은 지역마다 이렇게 갈린다.
서울특별시는 1억 6,500만원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과밀억제권역에서 서울을 뺀 지역과 세종특별자치시, 용인시, 화성시, 김포시는 1억 4,500만원이다.
광역시에서 과밀억제권역에 포함된 지역과 군지역을 뺀 곳, 그리고 안산시, 광주시, 파주시, 이천시, 평택시는 8,500만원이다.
그 밖의 지역은 7,500만원이다.
여기에 해당할 때 실제로 최우선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순서대로 5,500만원, 4,800만원, 2,800만원, 2,500만원이다. 서울과 그 밖의 지역 사이에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같은 보증금이라도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소액임차인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며, 되더라도 받는 금액이 달라진다.
가장 많이 놓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어느 기준이 적용되는지는 내가 이사한 시점이 아니라 그 집에 담보물권이 설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몇 년 전에 근저당이 잡힌 집이라면 그때의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지금 기준으로 소액임차인이라고 계산해 두었다가 배당 단계에서 아니라는 답을 듣는 경우가 여기서 나온다.
순위를 앞지르는 것들 - 당해세와 2023년의 변화
임차인이 순위를 확보했다고 해서 그 앞이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세금이 있다.
국세는 원칙적으로 다른 채권보다 우선하되, 법정기일 전에 설정된 담보권이나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권으로 담보된 채권에는 밀린다. 문제는 당해세였다. 그 재산 자체에 부과된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는 법정기일과 무관하게 앞서는 것으로 다루어져 왔고, 임차인이 아무리 일찍 확정일자를 받아 두어도 이 부분은 뚫고 들어왔다.
2023년 개정으로 여기에 숨통이 트였다.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은, 그 확정일자보다 법정기일이 늦은 당해세의 우선 징수 순서에 대신하여 변제받을 수 있게 되었다(국세기본법 제35조 제7항).
그러나 만능은 아니다. 확정일자보다 법정기일이 빠른 당해세는 여전히 앞서고, 당해세가 아닌 다른 국세도 법정기일이 확정일자보다 빠르면 앞선다. 선순위 근저당은 말할 것도 없다. 개정으로 달라진 것은 당해세 중 일부의 순서일 뿐, 임차인이 맨 앞으로 올라선 것이 아니다.
계약 전에 확인할 수 있는 것 - 이제는 임대인의 의무다
앞의 이야기를 모두 종합하면 결론은 하나다. 계약을 맺기 전에 내 앞에 무엇이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2023년부터 이것은 임차인이 눈치를 보며 부탁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7(임대인의 정보 제시 의무)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임대인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임차인에게 제시하여야 한다. 1. 제3조의6제3항에 따른 해당 주택의 확정일자 부여일, 차임 및 보증금 등 정보 2. 「국세징수법」 제108조에 따른 납세증명서 및 「지방세징수법」 제5조제2항에 따른 납세증명서
제시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임대인이 지는 의무다. 제1호는 그 집에 이미 들어와 있는 다른 임차인들의 확정일자와 보증금이 얼마인지를 보게 해 주고, 제2호는 임대인이 세금을 밀리지 않았는지를 보게 해 준다. 앞에서 본 당해세 문제가 바로 여기에 걸린다. 각 호의 정보는 임대인이 정보제공에 동의하거나 미납국세와 미납지방세 열람에 동의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
그래서 계약 전에 따져야 할 것은 결국 세 덩어리다. 등기부에 잡혀 있는 선순위 근저당의 채권최고액, 그 집에 이미 살고 있는 다른 임차인들의 보증금 합계, 그리고 임대인의 미납 세금이다. 이 셋을 더한 금액에 내 보증금을 얹었을 때 그 집 시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인가. 그 비율이 이 계약의 위험도다.
임대인이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얼버무린다면, 그 자체가 판단의 재료가 된다.
정리 - 하루가 아니라 0시, 금액이 아니라 비율
세 가지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인도와 전입신고는 대항력을 만들고 그 집에 계속 살 권리를 준다. 여기에 확정일자가 더해지면 우선변제권이 되어 경매에서 순위를 준다. 보증금이 소액이면 확정일자 없이도 일정액을 가장 먼저 받는 최우선변제권이 붙지만, 금액이 작고 기준 시점이 담보물권 설정일이라는 제약이 있다.
실무에서 새겨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점이다. 대항력이 다음 날 0시에 생긴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잔금일의 몇 시간이 순위를 뒤집는다. 다른 하나는 비율이다. 내 보증금 액수가 얼마인지보다, 내 앞에 선 권리들의 합계가 그 집 값에서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가 회수 가능성을 결정한다.
전세는 여전히 개인이 개인에게 담보 없이 큰돈을 맡기는 제도다. 그 돈을 지키는 장치들이 법에 마련되어 있지만, 장치는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작동한다. 요건과 시점을 정확히 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그 집에 실제로 경매가 시작되었을 때 임차인에게 무엇이 열리는지, 배당요구와 인수의 문제를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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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8. 11.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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