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랫집 천장에 물 얼룩이 번지기 시작하면, 피해자의 발걸음은 거의 반사적으로 바로 윗집을 향한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세입자인지 집주인인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문부터 두드리며 책임지라고 다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파트 누수의 책임 소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만, 책임은 그 방향대로 흐르지 않는다. 윗집 거주자가 임차인이라면 원칙적으로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고, 하자가 공용부분에 있다면 싸울 상대는 아예 윗집이 아니다.
이 글은 아파트를 비롯한 집합건물의 누수 분쟁에서 임차인·집주인·전 주인·입주자대표회의 사이에 책임이 어떻게 갈리는지를 한자리에 정리하고, 피해자인 아랫집이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실무 순서를 짚는다.
전유부분과 공용부분 — 누수 분쟁의 첫 갈림길
아파트 같은 집합건물은 법적으로 두 영역으로 나뉜다. 세대 현관 안쪽, 구분소유자가 단독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는 부분이 전유부분이고, 복도·계단·외벽·옥상처럼 여러 세대가 함께 쓰는 부분이 공용부분이다.
누수 분쟁의 출발점이 바로 이 구분이다. 하자가 전유부분에 있으면 그 세대의 점유자나 소유자가 책임을 지고, 공용부분에 있으면 관리 주체가 책임을 진다. 대법원도 건물의 어느 부분이 공용부분인지는 소유자들 사이에 특별한 합의가 없는 한 건물의 구조에 따른 객관적인 용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대법원 1995. 2. 28. 선고 94다9269 판결).
문제는 하자가 전유부분에 있는지 공용부분에 있는지를 겉으로 봐서는 비전문가가 판정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건 초기에 누수탐지 등으로 원인 위치부터 확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윗집에 세입자가 사는 경우 — 임차인이 아니라 소유자에게 물어야 한다
많은 피해자가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임차인이 통상적인 방법으로 집을 사용하던 중에 배관 노후 같은 전유부분 자체의 하자로 누수가 발생했다면, 임차인에게 잘못을 물을 수 없다. 법은 이 상황을 공작물책임이라는 틀로 규율한다.
민법 제758조(공작물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 ①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③ 전2항의 경우에 점유자 또는 소유자는 그 손해의 원인에 대한 책임있는 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구조는 이렇다. 1차 책임은 집을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점유자, 곧 임차인에게 있다. 그러나 임차인이 손해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배상 책임은 임차인이 아니라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조문상 소유자에게는 면책 규정이 없다. 소유자는 자기에게 잘못이 없어도 책임을 지는, 사실상의 무과실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다.
그러니 윗집에서 "저는 세입자라 모르는 일"이라는 답이 돌아와도 막막해할 일이 아니다. 애초에 임차인은 상대가 아닌 경우가 원칙이다. 등기부등본으로 그 호실의 소유자를 확인해 소유자에게 청구하면 된다.
집을 새로 산 윗집 주인의 항변 — 전 주인 탓이어도 아랫집에는 현재 소유자가 책임진다
실무에서 자주 마주치는 항변이 있다. "집을 사고 보니 누수가 있더라. 전 주인 때 생긴 문제니 원인부터 밝혀야 하지 않느냐. 그 전에는 고쳐줄 수 없다." 얼핏 일리 있게 들리지만, 아랫집을 향해서는 통하지 않는 논리다.
아랫집에 대한 관계에서는 현재 소유자가 우선 책임을 진다. 누수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다. 전 주인의 잘못은 현재 소유자가 전 주인에게 따질 문제이지, 아랫집에게 기다리라고 할 근거가 아니다.
현재 소유자에게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자의 원인이 전 주인 쪽에 있다면 앞서 본 민법 제758조 제3항에 따라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고, 매매 목적물에 숨은 하자가 있었다면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민법 제580조)을 물을 수도 있다. 다만 하자담보책임에 따른 권리는 민법 제582조에 따라 하자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안에 행사해야 하는 제척기간이 걸려 있어, 이 기간을 넘기면 청구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시간을 끄는 데에는 대가도 따른다. "원인 파악 중"이라며 수리를 미루는 사이 아랫집의 피해가 번져 나가면, 그 확산된 피해 부분은 전적으로 현재 소유자가 책임져야 한다.
배관 파열 — 같은 파이프라도 입상배관이면 공용, 가지배관이면 전유다
배관이 터졌다고 해서 무조건 윗집 책임인 것도 아니다. 아파트의 배관에는 공용배관과 전유배관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여러 세대가 함께 쓰는 수직 입상배관이나 공동 오배수관은 공용부분으로, 그 배관에서 갈라져 나와 한 세대 안에서만 쓰이는 가지배관은 전유부분으로 본다. 같은 파이프 라인이라도 어느 구간에서 물이 새느냐에 따라 책임 주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판단이 늘 간명한 것도 아니다. 세대 안쪽을 지나는 배관이라도 구조와 용도에 따라 공용부분으로 판단된 사례가 있고, 같은 배관을 두고 심급에 따라 결론이 갈리기도 한다. 배관 누수야말로 전문적인 원인 규명 없이는 책임 소재를 말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베란다 누수 — 어디서 시작됐느냐에 따라 상대가 달라진다
베란다 누수도 마찬가지다. 원인이 외벽의 균열이나 외벽 방수 불량처럼 공용부분인 바깥 벽체에서 시작됐다면 관리 주체의 문제이고, 윗세대 내부의 바닥 타일 방수층 파손처럼 전유부분에서 시작됐다면 그 세대 소유자의 문제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똑같이 "베란다 천장에서 물이 샌다"이지만, 어디서 시작됐느냐에 따라 싸울 상대가 완전히 달라진다. 여기서도 답은 원인 규명이 먼저라는 것이다.
하자 위치가 끝내 밝혀지지 않으면 — 법은 공용부분 하자로 추정한다
그런데 원인 위치가 끝내 밝혀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때를 위해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피해자에게 결정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건물의 설치·보존상의 흠 추정) 전유부분이 속하는 1동의 건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흠으로 인하여 다른 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그 흠은 공용부분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자 위치가 밝혀지지 않으면 공용부분의 하자로 추정된다는 뜻이다. 피해자로서는 하자가 윗집 전유부분에 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해서 막다른 길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 공용부분 하자를 전제로 관리 주체를 상대할 수 있게 된다.
공용부분 하자라면 상대는 윗집이 아니다. 아파트라면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 주체가, 그 밖의 집합건물이라면 관리단이 공용부분의 유지·보수를 맡는다. 공동주택관리법도 관리주체의 업무 첫머리에 공용부분의 유지·보수와 안전관리를 두고 있다(제63조 제1항). 공용부분 하자가 의심되는 사안에서 윗집과 아랫집이 서로 으르렁거릴 일이 아닌 이유다.
실제 분쟁의 상당수가 이 구조를 몰라서 생긴다. 윗집도 임차인·전 주인·관리단으로 책임이 갈리는 구조를 모른 채 억울함만 안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 누구의 잘못인지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양쪽 모두를 위한 길이다.
피해자인 아랫집의 행동 순서 — 고치기 전에, 원인과 증거부터
마지막으로, 피해자인 아랫집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이다. 책임 소재 규명이 늦어질수록 피해는 계속 커진다. 생활은 해야 하니 결국 자기 비용으로 먼저 수리한 뒤 나중에 상대방에게 상환을 청구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말끔히 수리를 마치는 순간, 상대방의 책임을 입증할 증거도 함께 사라진다. 수리가 끝난 뒤에야 "이제 와서 원인을 알 수 없지 않느냐"며 책임을 피하려는 상대가 많고,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나온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하다. 반드시 누수 발생 지점과 원인 파악을 마치고, 증거를 철저히 남긴 뒤에 수리해야 한다. 아랫집이 밟아야 할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윗집 거주자가 임차인인지 소유자인지 등기부등본으로 확인한다. 둘째, 사건 초기에 누수탐지 업체를 통해 원인 위치를 확정한다. 셋째, 공용부분이 의심되면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에 즉시, 가급적 내용증명으로 통지한다. 넷째, 수리 전에 사진·영상, 누수탐지 결과서, 전문업체 소견서, 견적서와 수리내역을 확보한다. 다섯째, 상대방에게 피해 확산 방지를 요구하는 내용을 서면으로 남긴다. 수리를 미룬 데 따른 지연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된다.
덧붙이면, 누수로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위자료 기대는 별도 글에서 다뤘듯 제한적이다. 회복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수리 비용과 원상회복이고, 그래서 더더욱 증거 확보가 실익을 좌우한다.
정리 — 누구 잘못인지보다, 원인 위치부터다
정리하면 이렇다. 윗집에 세입자가 살아도 원칙적으로 상대는 소유자다. 집을 갓 산 소유자라도 아랫집에 대해서는 우선 책임을 지고, 전 주인과의 정산은 그다음 문제다. 배관과 베란다 누수는 하자 구간이 전유인지 공용인지에 따라 상대가 갈리고, 끝내 위치가 밝혀지지 않으면 법은 공용부분 하자로 추정한다.
결국 누수 분쟁의 첫 질문은 누구 잘못이냐가 아니라, 하자가 어디에 있느냐다. 원인 위치가 확정되어야 상대가 정해지고, 증거가 남아 있어야 그 상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천장의 얼룩 앞에서 윗집 문을 두드리기 전에, 먼저 원인과 증거부터 붙잡아 두어야 한다.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7. 29.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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