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성범죄 재판에서 다투어지는 것은 동의가 있었는지다. 그런데 동의를 아예 묻지 않는 죄가 하나 있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정한 나이 아래의 사람과는 상대방이 동의했더라도 법이 이를 강간과 같이 취급한다. 이 글은 그 나이 기준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짜였는지를 설명한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이 글은 어디까지가 허용되는지를 알려주는 글이 아니다. 나이 기준은 여러 처벌 조항 가운데 하나의 경계선일 뿐이어서, 어느 구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가 없다는 뜻이 되지 않는다. 이 점을 전제로 읽어야 기준의 의미가 정확히 보인다.
의제강간이란 무엇인가 - 동의를 다툴 여지가 없는 죄
의제(擬制)란 사실이 실제로 어떠하든 법이 그렇다고 못 박는 것을 말한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고 상대방이 동의했더라도 법이 강간과 같이 취급하는 범죄다. 형법 제305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형법 제305조 제1항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제301조 또는 제301조의2의 예에 의한다.
조문 끝의 "예에 의한다"는 표현이 낯설 수 있는데,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과 같은 형으로 처벌한다는 뜻이다. 현행 형법에서 강간(제297조)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제추행(제298조)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래서 이 죄에서는 동의가 있었는지가 다투어질 여지 자체가 없다. 일정한 나이 아래에서는 유효한 동의를 할 수 있는 지위 자체를 법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의 여부를 심리하는 다른 성범죄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 여기다.
나이 기준의 3층 구조 - 13세, 16세, 그리고 행위자의 19세
기준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상대방의 나이와 행위자의 나이가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신설된 형법 제305조 제2항을 보자.
형법 제305조 제2항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19세 이상의 자는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제301조 또는 제301조의2의 예에 의한다.
제1항과 제2항을 겹쳐 놓으면 세 개의 층이 나온다.
① 상대방이 13세 미만이면, 행위자의 나이를 묻지 않고 의제강간이 성립한다(형법 제305조 제1항).
② 상대방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이면, 행위자가 19세 이상일 때 의제강간이 성립한다(형법 제305조 제2항).
③ 상대방이 16세 이상 19세 미만이면 의제강간죄로는 의율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곧바로 붙여야 할 말이 있다.
세 번째 층은 이 글에서 가장 오해되기 쉬운 부분이다. 의제강간죄로 의율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이 죄명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일 뿐, 그 관계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행위에는 뒤에서 보는 다른 처벌 조항들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실제 사건은 대부분 그 조항들의 영역에서 다투어진다.
참고로 조문의 나이는 모두 만 나이이고, 행위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제2항이 신설되기 전에는 13세 미만이라는 기준 하나뿐이었다. 2020년 5월 개정으로 보호 범위가 16세 미만까지 넓어졌는데, 그 배경에는 이른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온라인 성착취·그루밍 범죄로부터 청소년을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왜 행위자의 나이까지 따지는가 - 또래 관계를 처벌하지 않기 위한 설계
제2항이 행위자를 "19세 이상의 자"로 한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준을 16세 미만으로 올리면서 행위자를 한정하지 않으면, 또래 청소년 사이의 교제까지 전부 범죄가 되어 버린다. 입법자는 미국 일부 주의 이른바 로미오와 줄리엣 법(Romeo and Juliet Law)을 참고해, 19세 미만인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사람과 합의하에 한 성적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청소년 사이의 자연스러운 교제를 형사처벌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물론 이 제외는 폭행·협박이나 위계·위력이 없는 경우의 이야기다. 그런 사정이 있다면 행위자가 몇 살이든 강간죄·강제추행죄 등이 그대로 문제 된다.
여기서 법이 실제로 구분하는 것은 나이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의 비대칭이다. 성인이 청소년에게 접근하는 상황과 또래끼리의 관계는 영향력, 경험, 판단 능력의 격차가 다르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기준이 복잡해 보이는 것은 입법의 실수가 아니라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루려 한 결과다. 성인의 접근으로부터 청소년을 두텁게 보호하되, 청소년끼리의 관계를 형사처벌로 재단하지 않는 것.
이 조항의 위헌 여부도 다투어진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6월 27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형법 제305조 제2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헌법재판소 2022헌가40 등 결정). 갈수록 수법이 정교해지는 온라인 성범죄와 그루밍 범죄로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입법 취지를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열여섯이 넘으면 문제가 없는가 - 전혀 그렇지 않다
의제강간죄 자체는 나이로 갈린다. 그러나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의제강간 하나뿐인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실제 사건에서 더 자주 문제 되는 것은 다음 조항들이다.
먼저 형법 제302조는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위계와 위력의 폭은 생각보다 넓다. 속이는 것, 지위나 관계에서 오는 영향력을 이용하는 것이 모두 포함될 수 있고, 보호 대상은 19세 미만 미성년자 전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에는 더 촘촘한 조항들이 있다. 제8조의2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13세 이상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는 행위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2019년 신설). 가출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청소년을 노리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조항이다.
2021년 신설된 제15조의2는 이른바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한다. 19세 이상인 사람이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대화를 지속·반복하거나 성적 행위를 하도록 유인·권유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직접 만나기 전, 대화 단계만으로도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조항의 의미가 크다.
대가가 오갔다면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로 무겁게 처벌되고(청소년성보호법 제13조), 사진이나 영상이 결부되면 성착취물 제작·소지 등의 문제가 된다(같은 법 제11조). 아동복지법 제17조가 금지하는 성적 학대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들 조항은 의제강간의 나이 구간과 무관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실제 사건에서는 몇 살이었는지만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대가나 매개가 있었는지가 함께 평가된다. 나이 구간만 보고 안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 이것이 이 글에서 가장 힘주어 말하고 싶은 대목이다.
나이를 몰랐다는 항변 - 방패가 되기 어렵다
실제 사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주장은 상대방의 나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고의의 문제로 다루어지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상대방이 해당 연령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서도 행위로 나아갔다면, 즉 미필적 인식만 있어도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다. 몰랐다는 말이 곧 방패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개정은 어느 방향으로 왔는가 - 일관된 보호 확대
이 영역의 규율은 한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2020년 의제강간 기준 연령이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올라갔고(행위자 19세 이상), 2021년에는 온라인 그루밍 처벌 조항이 신설됐다. 그 뒤로도 국회 안팎에서는 강간죄의 성립 요건을 동의 여부 중심으로 재구성하자는 이른바 비동의간음죄 도입 논의가 이어져 왔다. 입법으로 확정되지 않은 논의는 결과를 지켜볼 일이지만, 흐름이 어느 쪽을 향해 왔는지는 분명하다.
기준이 여러 번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 주는 것이 있다. 이 영역의 판단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따라 계속 움직여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한결같이 청소년 보호를 넓히는 쪽이었다.
정리 - 이 법이 지키려는 것
복잡해 보이는 기준을 줄이면 이렇다. 13세 미만에 대해서는 누구든, 13세 이상 16세 미만에 대해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의제강간의 책임을 진다. 그리고 그 바깥이라고 해서 법의 보호가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법이 지키려는 것은 결국 하나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직 온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전제, 그래서 그 형성 과정을 어른의 세계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나이 기준은 허용의 경계선이 아니라 보호의 경계선이다. 그 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보다 그 선이 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이 제도를 정확하게 읽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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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8. 3.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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