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매달 같은 고지서가 도착합니다. 점포가 크든 작든, 전기를 쓰든 안 쓰든, 칸마다 똑같이 적힌 '기본요금'과 '특별수선비'. 어떻게 계산된 금액인지 물어도 "원래 다들 내는 것"이라는 답만 돌아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수백만 원을 내라는 내용증명이 날아듭니다.
집합건물에서 점포를 운영해 보신 분이라면 한 번쯤 마주치는 장면입니다. 오늘은 권한이 분명치 않은 단체가 수년치 관리비와 정체 모를 '입점비'를 청구해 온 사건을, 그 청구의 대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채무'로 확인되기까지의 과정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판결문 중 발췌
사건의 배경
의뢰인은 한 노후 상가에서 작은 점포를 운영하면서, 같은 건물 지하의 4평 남짓한 공간을 창고로 빌려 쓰고 있었습니다. 전기도 수도도 거의 쓰지 않는, 짐을 두는 용도의 작은 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간 이 상가를 관리해 왔다는 한 번영회가, 이 작은 창고를 두고 여러 해에 걸친 미납 관리비와 252만 원의 '입점비', 그리고 공사비 명목의 장기수선비 부담금을 청구했습니다. 독촉은 한두 번이 아니라 여덟 차례의 내용증명으로 이어졌고, 청구액은 어느새 750만 원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원래 내던 것'이라는 말 앞에서
문제는 그 금액이 어떻게 산정되었는지였습니다. 관리비는 점포 면적과 무관하게 모든 칸에 똑같이 부과되고 있었고, '입점비'는 어느 법에도 없는 항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단체는 스스로 게시한 공지문에서 "현재 우리 상가에는 관리단이 구성되어 있지 않다"고 인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합건물의 관리비는 누구나, 아무 방식으로나 거둘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의뢰인은 근거를 물을 때마다 "다들 그렇게 내왔다"는 답에 막혀 있었습니다.
해결방법 - 채무부존재확인의 소
저는 의뢰인을 대리해, 청구된 채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 달라는 채무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집합건물의 관리비를 청구할 권한은 구분소유자 전원으로 당연히 성립하는 '관리단'과 그 관리인에게 있다는 점이었습니다(집합건물법 제23조, 제25조). 일부 입점자들로 꾸려진 단체가 관리를 오래 해 왔다는 사정만으로 강제 징수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설령 비용을 분담시키더라도 그것은 규약에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지분 비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같은 법 제17조). 면적과 무관한 균등 부과는 이 원칙에 어긋납니다.
청구서의 '근거'를 하나씩 무너뜨리는 일
저는 상대방이 보내온 관리비 고지서를 항목별로 분석해, 면적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균등 부과의 실태를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입점비'에 대해서는, 그것이 임원 네 명이 모인 '층별위원 회의'에서 만들어진 항목일 뿐 구분소유자들의 적법한 총회 의결을 거친 적이 없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더구나 그 인상 결의는 의뢰인이 이미 입주한 뒤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소급해 적용할 근거도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2017년부터 무단으로 점유했다'며 6년치를 청구한 부분은, 등기부와 임대차계약서로 실제 입주 시점이 2022년임을 특정해 반박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며 든 대법원 2010다94076 판결도, 실제로는 적법한 선임이나 권한 없이 관리비를 청구한 측이 패소한 사안임을 짚어 되돌려 놓았습니다. 여기에 관리비 채권의 소멸시효 항변을 더했고, 상대방이 마지막으로 든 사무관리·부당이득 주장까지 차례로 반박했습니다.
법원의 결정
법원은 청구액의 대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컸던 252만 원의 입점비는 전액 채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4년 넘게 무단점유했다며 청구된 관리비는 실제 입주 시점 이후로만, 그것도 상대방이 주장한 월 7만 원이 아니라 입증된 범위 안에서만 인정되어 약 97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결과적으로 750여만 원의 청구 가운데 약 150만 원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존재하지 않는 채무'로 확인되었습니다. 소송비용도 상대방이 80%를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법원이 그 단체의 관리단으로서의 성격 자체는 인정했지만, 정작 청구된 금액 하나하나에는 근거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집합건물의 관리비를 청구할 권한은 구분소유자 전원으로 성립하는 관리단, 또는 그들로부터 적법하게 위임받은 자에게 있습니다. 오랜 기간 실질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사정을 들어 그런 단체에도 관리단의 지위를 인정한 판례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 판례는, 입점자들이 구분소유자를 대리해 그 의사를 모은 것으로 볼 수 있고 법이 정한 동의 요건까지 갖춘, 제한된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단지 오래 관리해 왔다는 외형만으로 관리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상대방은 구분소유자 전원이 아니라 일부 입점자들로 꾸려진 단체였고, 구분소유자들이 그 권한을 위임했다고 볼 사정도, 법이 정한 동의 절차를 거친 사정도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오랜 관리 실적과 자체 회칙을 들어 관리단 성격을 인정했지만, 이는 위 판례가 전제한 상황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게다가 인정된 관리비조차, 의뢰인이 이미 납부했고 상대방도 인정하던 금액이 공제되지 않은 것이어서 그 액수마저 더 줄어들 여지가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항소심에서 더 다툰다면 청구 전부를 '부존재'로 이끌어낼 수 있는 사안으로 보였습니다. 다만 의뢰인은 이 정도 선에서 긴 분쟁을 매듭짓기를 원하셨고, 저는 그 뜻을 존중했습니다.
무언가를 오래 해왔다는 사실과, 그것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원래 내던 것"이라는 말 뒤에 가려져 있던 청구서는, 비로소 그 '원래'의 근거를 따져 묻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일로 고민하고 계시다면
상가나 지식산업센터 같은 집합건물에서, 자격이 분명치 않은 단체가 산정 근거도 알기 어려운 관리비나 수선유지비를 요구하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오래 관리해 왔다는 사정만으로 그 청구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과의 근거와 절차를 하나씩 따져 보면, 충분히 다투어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슷한 청구로 고민하고 계신다면, 받으신 고지서와 내용증명을 들고 한 번 상담을 받아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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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변호사 부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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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법률사무소 가양」에 2026. 6. 28. 게시한 글입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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